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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자의 유레카!] 코로나 사망자 10만 육박....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팬데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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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겨허헝 작성일 20-04-11 10:4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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덫에 걸린 곰쥐를 묘사한 그림. 쥐에 기생하는 벼룩으로 인해 흑사병(페스트)이 퍼져 나갔습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이기자의 유레카!-13] 10일 기준 전 세계적으로 160만명 이상이 감염된 코로나19. 치명률이 높은 편은 아니지만 백신과 치료제가 아직 없는 신종 전염병이라 사람들의 우려가 큽니다. 유사 이래 우리는 인류를 전멸시키려는 전염병과 끝없는 사투를 벌여왔습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지만 그래도 인류는 살아남았습니다.

코로나19처럼 전 세계적인 질병의 대유행 상태인 '팬데믹'을 일으키며 인류를 종말 위기로 내몰았던 전염병들은 무엇이 있었을까요? 오늘은 역사상 가장 큰 피해를 몰고 온 팬데믹들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영국 런던을 덮친 흑사병(페스트)으로 희생된 사람들을 매장하고 있습니다. 중세 유럽을 휩쓴 흑사병의 위력은 어마어마했죠. /사진=게티이미지뱅크

◆2억명의 목숨을 앗아가다

2억명. 상상하기조차 힘든 숫자입니다.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내몬 것은 흑사병(페스트)이었습니다. 페스트는 여러 번 창궐해 인류를 위협했지만 그중에서도 14세기 유럽에서 팬데믹을 일으킨 흑사병이 가장 치명적이었죠. 1347년부터 1351년까지 최소 7500만명에서 최대 2억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당시 유럽 인구의 30~60%에 해당합니다. 지금이야 익숙한 개념이지만 당대 사람들은 세균·바이러스 등 미생물이란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무엇이 병을 일으키는지는 잘 몰랐지만 경험상 '접촉'을 통해 병이 전파된다는 것은 알고 있었죠.

흑사병이 유럽을 휩쓸던 시기 라구사 공화국(현 크로아티아 일부)은 전염병에 맞서 독특한 조치를 단행합니다. 아드리아해에 접한 항구도시 라구사(현 두브로브니크)는 라구사로 들어오는 모든 선박과 무역상들을 의무 격리하는 법 을 통과시켰습니다. 흑사병 창궐 지역에서 온 사람들은 한 달간 특정 지역에서 격리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페스트의 잠복기는 최대 일주일입니다). 이후 증세가 나타나지 않으면 입항을 허용했습니다. 현재 보건당국이 모든 국외 입국자를 대상으로 2주간의 자가격리를 하는 것과 비슷하죠. 이후 격리기간은 40일까지 늘어났습니다. 중세 기독교 사회에선 40일간의 대홍수나, 예수가 광야에서 단식한 40일 등 '40'이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지니기 때문인데, 이 조치는 이탈리아어로 '40일간'을 뜻하는 '콰란테나( quarantena )'로 불렸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쓰는 검역( quarantine· 쿼런틴)의 어원입니다.

이런 격리조치에도 불구하고 흑사병을 막긴 어려웠습니다. 무역 의존도가 큰 라구사가 도시를 완전히 봉쇄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죠. 라구사는 섬에 '라자레토( lazaretto )'라는 감염병 전문병원도 세웠습니다. 흑사병 환자들을 격리해 치료하는 시설로 비용은 전부 당국이 부담했다고 합니다.

동로마제국(비잔틴제국)의 황제인 유스티니아누스 1세와 신하들을 그린 그림. 지중해를 주름잡던 동로마제국도 박테리아 앞에선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국을 굴복시킨 박테리아

역사상 가장 치명적이었던 전염병은 박테리아(예르시니아 페스티스)가 그 원인이었습니다. 흑사병은 중세 유럽에 처음 나타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보다 800년가량 앞서 나타난 흑사병은 웅장한 수도 콘스탄티노플(현 이스탄불)을 자랑하던 '동로마제국(비잔틴제국)'도 굴복시켰습니다.

학계에선 흑사병(페스트)이 중국이나 중앙아시아에서 발원해 훈족 등 유목민을 따라 서쪽으로 아프리카 이집트 등지로 전파된 것으로 추정합니다. 당시 동로마의 지배를 받던 이집트는 공물로 곡식을 바쳤는데 지중해를 오가는 화물선엔 페스트를 옮기는 쥐들이 타고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541년 콘스탄티노플에서 역병이 창궐합니다. 흑사병에 걸리면 발열 증상과 고름으로 가득 찬 수포가 온몸을 뒤덮었습니다. 환자들은 혼수상태에 빠졌고 이틀 내로 숨을 거뒀죠. 치명률은 40~70%에 달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당시 기록에 의하면 흑사병이 맹위를 떨칠 때 콘스탄티노플에서 매일 5000~1만명이 숨졌다고 합니다. 사망자가 급증하면서 묘지가 부족해지자 군인들이 임시방편으로 시신을 길 옆 구덩이로 치우거나 빈 배에 실어 먼바다로 내보내 수장(水葬)하기도 했습니다. 동로마를 덮친 흑사병은 1년간 3000만~5000만명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당시 전 세계 인구는 약 2억명이었습니다). 이민족이 아닌 눈에 보이지 않는 전염병에 제국이 존망의 위기로 내몰린 것이죠. 과학자들은 치료법도 없던 시기에 이 질병이 어떻게 종식됐는지 알 길은 없습니다만 운 좋게 살아남은 사람들이 면역력을 갖게 됐고, 결국 종식으로 이어졌다는 추측을 하고 있습니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모형. 20세기 최악의 감염병인 `스페인독감`은 그 이름처럼 스페인에서 유래한 질병이 아닙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20세기 최악의 감염병

인플루엔자는 다양한 변종이 있고, 인류는 끊임없이 이에 시달렸습니다. 그중 가장 큰 피해를 안긴 것은 '스페인독감'이었습니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A형(H1N1)으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5억명이 감염됐고, 전 세계 인구의 3~6%에 해당하는 5000만~1억명이 숨졌죠. 전쟁(1차 세계대전 사망자는 약 1500만명)보다 많은 사람이 희생된 것입니다. 이름만 봐선 스페인에서 유래한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스페인 언론이 이 질병을 주로 다뤘기에 '스페인독감'으로 불렸습니다.

스페인독감은 건강한 성인들에게 더 큰 피해를 입혔습니다. 보통 유소년, 고령자, 기저질환자들이 독감에 취약한 것과는 다른 양상이었죠. H1N1 바이러스가 건강한 사람의 면역력을 과도하게 반응하도록 만드는 '면역 과민 반응(사이토카인 폭풍)'이 원인이었습니다. 코로나19도 일부 젊은 환자들이 안타깝게 사망했는데 이 역시 사이토카인 폭풍이 원인으로 추정됩니다. 건강할수록 바이러스 감염엔 취약한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진 것이죠.

천연두에 감염된 아즈텍인을 묘사한 그림. 말을 탄 스페인 정복자들의 총과 대포보다 무서운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질병이었습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정복자의 총보다 무서웠던 '이것'

미주 대륙의 식민지화는 현지 원주민들에게 큰 피해를 안겼습니다. 말을 탄 채 화승총과 대포를 앞세운 스페인 정복자들보다 아즈텍인들에게 더 큰 피해를 입힌 것은 '천연두'였죠. 천연두는 수백 년 동안 유럽, 아시아, 아라비아반도 등에서 창궐했습니다. 감염된 10명 중 3명이 사망했습니다. 유럽 정복자들이 16세기 초 중남미에 상륙했을 때 신대륙의 원주민들은 천연두에 대한 면역력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 결과는 참혹했죠. 원주민의 90%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1800년대 유럽에선 매년 40만명이 천연두로 숨졌죠. 1520년 이후 천연두로 인해 목숨을 잃은 사람은 5600만명으로 추정됩니다.

우두법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18세기 후반 영국 의사 에드워드 제너는 우두(소의 두창) 고름을 피부에 접종하면 천연두에 면역이 생긴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우두법`의 발견으로 인류는 천연두를 이길 수 있었죠.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다행인 것은 천연두는 백신으로 종식된 첫 번째 전염병 이 됐다는 것입니다. 18세기 후반 영국 의사 에드워드 제너는 소젖 짜는 여인들이 우두를 가볍게 앓고 지나가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들이 천연두에 면역력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 제너는 정원사의 어린 아들에게 우두를 접종한 뒤 천연두 바이러스에 노출시켰고 천연두에 면역력이 생겼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종두법'의 발견이었죠. 이는 백신 개발로 이어졌습니다. 인류는 천연두에 맞설 백신을 확보했고 마침내 1980년 세계보건기구( WHO )는 천연두가 지구상에서 사라졌다고 선언할 수 있었습니다.

[이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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