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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파의 인천 진출을 좌절시킨 최태준이 꼴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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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열이왕자 작성일 18-12-17 11:1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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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중반 서울은 호남 조폭들이 주도권을 잡고

3대 조직인 서방파,양은이파,OB파 가

서로 경쟁하며 전국 주먹계를 두고 치열한 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허나 서울은 이미 포화 상태로 더 이상의 세력 확장이

어렵다는걸 느낀 조폭들은 지방 진출을 계획하기 시작했고

이때 서방파의 두목 김태촌은 인천에 관심을 두며

인천 진출을 위한 계획들을 세워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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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촌이 인천을 눈독들인 이유는

이 당시 호남 출신 조폭들인 선장파가 인천에 막 진출하여

자리를 잡은 시점이였고 선장파의 두목 김운과는

옛날 광주에서 활동할때 부터 이어진 인연으로

김운이 이끄는 선장파를 이용하여 손쉽게 인천을

장악할 수 있을거라는 판단이 있었기 때문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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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김태촌의 인천 진출 계획을 감지하고 있던

이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당시 인천 토착 세력으로

인천 최대 조직이였던 꼴망파의 두목 최태준 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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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준은 조폭 1세대인 이정재가 이끌던

동대문 사단의 조직원으로 이정재가 사형을 당하고

동대문 사단이 박살이 나자 자신을 따르던 조직원들을

이끌고 자신의 고향이였던 인천으로 돌아와

꼴망파 라는 조직을 탄생시켜 인천 주도권을 잡은 뒤

인천 최대 조직 폭력배들의 두목에 올라선 인물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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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인천을 진출 하려는 전국 3대 조직인 서방파와

인천을 사수하려는 꼴망파 사이의 기류가 묘하게 흐르던

86년 7월 26일 인천 송도 호텔에서

한 사건이 터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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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김태촌의 뒷배였던 박모 부장검사가 있었는데

인천 송도 호텔 사장이던 황모 씨에게 빚이 있었다.

부장검사라는 타이틀로 차일피일 빚을 갚지 않자

황모씨는 박모 부장검사에게 따졌고

이에 열이 받은 박 부장검사는 김태촌을 시켜

황모씨를 손봐줄 것을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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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부장검사의 사주를 받은 김태촌은 그 즉시 서방파의

방계 조직이던 맘보파에게 지시를 내렸다.

김태촌의 지시를 받은 맘보파 조직원들은

인천에 상경하여 인천 송도 호텔로 향하게 되고

당시 호텔에서 업무를 보던 황모씨는

맘보파 조직원들에게 붙들려 무자비한 폭행을

당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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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상황이 터지자 최태준은 분노했다

자신의 지역에서 자기한테 언질도 없이 조직원들을

상경시켜 원정 폭행을 했다는 것은 자신을 무시한것과

다를바가 없었고 무엇보다 황사장은

꼴망파의 쩐주 역할을 하던 인물 이였고

김태촌의 행동은 자신을 공격한거나 다름 없었기에

최태준으로서는 분노할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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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서방파와의 정면 충돌은 저들에게

인천 진출을 본격적으로 시도하게 만들 명분이 될 수

있었기에 최태준은 분노를 삼키며

서방파와 그들의 비호를 받는 선장파를 예의주시 하며

때를 엿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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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지나지 않아 최태준이 기다리던 그 때가 찾아 오는데

그건 바로 86년 8월 14일 전국을 충격으로 몰아넣은 사건

서진룸살롱 사건이 터지게 된다.

(서진룸 사건은 전에 제가 쓴글이 있으니 팸코에서 서진룸살롱

검색하면 나옵니다.)

위 사건이 터지자 검경과 언론의 이목은

맘보파에게 집중 되었고 그들의 비호 세력인 서방파와

두목인 김태촌에게 까지 관심이 집중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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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파의 손을 묶어 버릴수 있는 절호의 찬스라고

여긴 최태준은 즉시 황사장을 만나 기자회견을 열어

김태촌과 박모 부장검사의 커넥션 그리고 맘보파가 벌인

인천 송도호텔 습격사건의 전말을 폭로 하라고 지시했고

최태준의 지시를 받은 황사장은 곧바로 기자회견을

열어 위 사건의 모든 전말을 폭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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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사장의 폭로 기자회견이 터지자

경찰은 곧바로 김태촌을 수배하여 검거작전에

총력을 기울이고 결국 피신해 있던 김태촌이

경찰의 압박을 버티지 못하고 그해 9월

목포경찰서를 찾아가 자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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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촌이 자수하게 되고 순식간에 두목을 잃게 된 서방파는

당시 최고 라이벌 세력이던 양은이파의 대대적인

공격을 받게 되고 순식간에 서울 주먹 판도는

그야말로 혼돈 그 자체가 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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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판을 뒤흔들어 김태촌과 서방파의

발을 묶는데 성공한 최태준은

여론이 어느정도 앉기를 기다린뒤 김태촌의 잔여

세력이나 다름없던 선장파를 쳐 내기로 마음먹고

87년 4월 8일 선장파의 아지트로 사용되던

인천 동아 양복점으로 수십명의 꼴망파 조직원들이

들이닥쳐 선장파 조직원들과 그들의 두목

김운을 습격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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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러운 꼴망파의 습격에 저항한번

못해보고 선장파 조직원은 무너져 버렸고

이때 김운이 꼴망파 조직원들이 휘두른 칼에 맞아

결국 두발을 전부 쓸 수 없는 불구가 되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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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황을 듣게 된 김태촌은 분노 했지만

자신은 이미 경찰 손아귀에 있었고 자신이 이끌던

서방파 또한 양은이파의 공격으로 서울을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였다.

결국 인천 진출을 포기한 김태촌은 인천에

남아있던 소수의 선장파와 불구가 된 김운에게

인천을 포기하고 광주로 가라는 말을 남김으로서

김태촌이 꿈꿔온 인천 진출은 실패로 막을 내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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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촌의 인천 진출을 저지시킨

최태준의 명성은 전국 주먹계에 알려지게 되고

그후로 꼴망파는 인천 최고 조폭세력으로 

확고한 위치를 잡게 된다.

현재까지도 인천 꼴망파는 건재하며 인천 내에서

활동중에 있으며 최태준은 공식적으로 은퇴를

하였지만 인천 내에서 주먹계의 대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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