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딸라에서 계엄 사령관으로 나온 양반 > 유머러스

본문 바로가기

유머러스

4딸라에서 계엄 사령관으로 나온 양반

페이지 정보

작성자 킴꼰짜르댕댕 작성일 19-04-17 11:52 댓글 0

본문

a.jpg

b.jpg

 

 

 

 

 

김종원(金宗元)

 

 

 

1940년 - 일본군 부사관으로 자원 입대. 남태평양에서 연합군과 싸움. 여기서 남들 총맞아 죽고 굶어 죽는 가운데 혼자 시체의 살을 뜯어 먹어가며 악착같이 살아남아 생환함. (여기에 투입된 조선 출신  4410명 가운데 4076명이 사망함.)

 

 

1945년 해방 후 경찰에 들어갔으나 부하들을 너무 패대는 바람에 수차례 징계를 받았지만 1946년 국방 경비대가 창설 되자 빽으로 입대하여 최고 사령관까지 지냄 

 

 

 

1948년 여순 사건때는 부역자 색출 작업에서 직접 일본도로 목을 베고, 베다 지치면 권총이나 소총으로 죽임. 그밖에 빨치산이 많이 활동하던 지역을 돌며 양민을 학살했는데 구덩이를 파놓고 직접 총을 난사하거나 소개되서 피난온 수백여명의 여자와 아이들을 빨치산으로 몰아 살해함.

 

하도 많이 쳐죽여대니까 한번은 국회에서 진상 조사를 나왔는데 자신 잘못이 들통날까봐 부하들을 빨치산으로 위장 시켜 이 조사단을 습격하게 함.하지만 이짓한게 들켜 3년형을 받음.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연대장으로 복귀하여 방어에 나섰으나 부하들에게 일본군식 반자이 돌격을 강요 한다거나 중과부적으로 후퇴한 부하들을 직접 총살 한다거나, 자신의 작전에 토를 달았다고 총살해버리려 한다거나, 지나가는데 경례를 하지 않았다고 구타를 한다거나 수많은 악행을 저지름.

   

 

당시 그를 보좌하던 수많은 미군 군사고문관들도 하나 같이 '성격이 포악하고, 전술에 무지하며 무능해서 부하들에게도 인기가 없다'고 증언함

 

 

이러면서도 매일마다 신문을 샅샅히 뒤지며 신문기자들이 자신을 헐뜯는 기사를 쓰면 찾아가서 기자를 두들겨 패고 사무실을 박살 내놓음.

 

 

결국 1950년 7월 보직 해임 당했으나 빽으로 인해 곧 대령으로 승진함

 

 

 

전후에는 다시 경찰 국장을 맡았으나 역시 부하들을 패는등 성질 머리는 여전했고 일자무식 티를 많이 냄.

(회의 중에 '인플레(인플레이션)로 인해 국민들이 힘들어 한다'라는 말이 나오자 '당장 가서 '인플레'라는 놈을 잡아오라며 명령을 내림' )

 

 

 

 

 

 

 

결국 1961년 4.19로 인해 쉴드 쳐줄 빽들이 다 사라지자 법의 심판을 받아서 4년형 받고 몇년뒤 병으로 사망.

 

 

 

 

 

 

 

 

 

 

 

 

 

김두한한테 총들이댄건 과장이 아니라 고증이었던것

랜덤글 보기 추천0 이 글을 추천하셨습니다 비추천0 스크랩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Copyright © mobile-c.net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