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를 부활시킨 비잔틴제국의 검, 벨리사리우스 > 유머러스

본문 바로가기

유머러스

로마를 부활시킨 비잔틴제국의 검, 벨리사리우스

페이지 정보

작성자 우와앙 작성일 19-10-11 13:04 댓글 0

본문

서쪽의 로마는 멸망의 길을 걸었지만 동쪽의 로마는 옛 로마의 영토를 수복하며 전성기를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전성기를 만든 왕의 이름은

'유스티니아누스 대제'

누구나 인정하는 비잔틴제국의 '대제'이다.

세계사를 배울때 꼭 들어가는 왕의 이름이지만

그의 정복을 도와준 두 개의 '검'에 대해서는 배우지를 않는다.

그중 한 명은

'나르세스' 이탈리아 반도에 있던 동고트왕국을 멸망시켜 이탈리아반도를 수복한 명장.


그리고 또 다른 한 명이 오늘 소개할

'벨리사리우스' 이탈리아와 북아프리카를 정복한 비잔틴제국의 검이며 사냥개였다.


풀네임은 '플라비우스 벨리사리우스'

고트족 출신으로, 일개 병사로 시작해 총사령관의 자리까지 오를정도로 군사적 업적이 뛰어났으나 유스티니아누스와는 사이가 좋지않아 지원을 적게 받으며 전쟁을 치뤄나갔다.

그의 첫 전투 기록은 527~528년까지 황제의 근위대 장교로서 아르메니아 공격작전에 참전했을 때였다.


이후 529년 고위급 장군이 되어 동쪽의 페르시아 전역에 참가하였고


530년 페르시아와 동쪽의 패자를 가리는 중요한 전투의 총사련관으로 임명된다.


그리고 바로 그해 일어난 전투가 그 유명한 '다라 전투'다.

벨리사리우스는 다라의 로마군 진지 외곽에 갈지자 모양의 도랑으로 방어선을 구축하였고

여기에 노련한 훈족 동맹군을 배치함으로써 수적으로 우세한 페르시아군을 격퇴한다.

그러나 531년 벨리사리우스 군대가 유프라테스 강을 따라 후퇴하는 아자레테스 휘하의 페르시아군을 맹추격하다가

동로마군은 사순절 무렵 불어온 강한 역풍으로 기세가 꺾이고, 아랍 동맹군이 대패한 뒤 유프라테스 강을 건너 후퇴한다. -'칼리니쿰 전투'

이 전투의 패배로 벨리사리우스는 책임을 지고 해임되었지만

532년, 콘스탄티노플에서 반란이 일어났을 때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에게 충성한 대가로 복귀한다.

이후 벨리사리우스는 황제의 검이 되어 서쪽 정벌에 나선다.

533년 북아프리카의 반달왕국을 공격하다.

반달 왕국의 겔리메르가 카르타고로 진격해온 동로마군에 맞서지만, 공격시점을 잘못 선택하는 바람에 동료 지휘관들이 성급하게 공격에 나서게 된다.

반달 왕국군은 처음에는 동로마 기병대를 압도하지만 겔리메르 동생의 전사소식이 전해지자 전세가 역전된다.

벨리사리우스는 전열을 재정비해 적군을 물리치고 카르타고를 수복한다.-아드 데키뭄 전투

(비잔틴제국 병사들)


535년 이탈리아 반도에서 동고트족을 몰아내기 위한 전역에 착수하다.

벨리사리우스가 이탈리아반도의 동고트 왕국을 몰아내고 로마(도시)를 점령한다.


537년 로마를 방어하다.

로마를 다시 점령하러 동고트 왕국의 대군이 몰려오자 벨리사리우스가 로마 시민들의 사기를 높이면서 여러번의 소규모 접전을 통해 비티기스가 이끈 동고트족 군대를 격파한다.

1년간 계속되던 방어전은 동로마의 지원군이 도착하자 결국 동고트족이 물러난다.

541년 페르시아를 다시 격퇴하다.


544~49년 이탈리아 반도에서 총사령관으로 활약히다.


그러나 점차 세력이 커지는 벨리사리우스를 경계한 유스티니아누스 대제는 그의 반란을 경계하여 보급을 끊어버렸고

유스티니아누스는 일선에서 물러난 뒤 콘스탄티노플에 머물렀다.

그러다 559년-케투스 전투

일선에서 물러나 있던 벨리사리우스가 콘스탄티노플 장성을 넘어온 훈족 일파 쿠트리구르족이 침입하자 다시 기용되어

자베르간 휘하 7000명의 쿠트리구르족을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매복과 속임수를 통해 격퇴한다.



(노인이 된 벨리사리우스)

그러나 왕의 경계를 받으며 적은 보급으로 전장을 누리기에는 한계가 오기 시작했다.

거기다가 이제는 아예 보급조차 주지않기 시작하자

벨리사리우스는 오랜 기간 실적을 내지 못하였고

이에 지쳐 총사련관직에서 물러난다.

왕의 검이 되어 전장을 누볐던 벨리사리우수는 562년 횡령혐의를 받으며 재산을 몰수당하게 되지만

무혐의로 풀려난 뒤 보통의 노인들처럼 지내다가

자신을 토사구팽한 유스티니아누스와 같은 해에 사망한다.



''싸움을 각오하지 않은 채 로마에 발을 들여놓으려는 사람은 꿈속을 헤매는 자이다. 나 벨리사리우스가 살아 있는 한 이 도시를 포기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랜덤글 보기 추천0 이 글을 추천하셨습니다 비추천0 스크랩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Copyright © mobile-c.net All rights reserved.